박소웅 경남언론포럼/고문
박소웅 경남언론포럼/고문

코로나19가 연일 맹위를 떨치자 방에만 있던 사람들이 숨을 쉬기 위해 다른 집으로 나갈 결심을 하고 있다.

이른바 한 달 살기다.

매일매일 같은 생활에 지친사람들은 삶의 현장을 바꾸고 싶어 안달이다. “여행은 다른데서 좀 살아 보는 거야” 하면서 가족이나 혼자서 어디론가 훌쩍 떠나는 사람들이 계속 늘어나고 있다.

이른바 ‘한 달 살기’가 등장 했던 2019년 3월에는 대부분이 제주도만 선택적으로 꼽았으나 지금은 강릉, 속초, 영덕, 통영, 하동 등으로 지역을 확대하면서 한 달 살기 정착지를 꼽고 있다.

연말연시와 방학동안에는 외국으로 나가는 것이 보통이였으나 지금은 해외여행도 쉽지 않아 국내에서 집을 떠나 한 달쯤 살기위해 지방소도시로 몰리고 있다.

특히 한 달 살기를 실천하는 사람들은 매일매일 터지는 정치권의 횡포가 이들을 더욱 자극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을 집에만 숨죽이고 있으라는 정책당국자의 말에는 이제 신물이 나기 때문에 정신적 고통과 새로운 삶의 지표를 찾기 위해 인구 밀도가 낮은 지역으로 떠나고 있는 것이다.

특히 경북의 문경을 비롯해 충북 단양, 경남산청, 거창, 하동 등 내륙과 울릉도와 욕지도까지 가서 집을 구하고 있다. 물론 코로나 사태는 전 세계적인 현상이기 때문에 외국에 나가는 것보다 국내에서 조용한 곳을 선택해 한 달 정도 휴식을 취하려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이에 따라 각 지방자치단체에서도 ‘한 달 살기’ 프로그램을 도입해 일부 식비와 숙박비를 지원해 주고 있다. 그런데 한 달만이라도 집을 떠나서 새로운 환경을 경험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대부분이 20대에서 30대 중반이거나 40대 초반인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다.

이들은 주(週)52시간 근무제가 시행된 이후 주말이나 공휴일을 이용해 트매 휴가를 즐겨 왔으나 경제사정이 피폐해지고 내일에 대한 희망이 찢어지는 현장을 몸소 느끼게 되자 현실에 대한 불만을 갖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다.

최근 모정당의 ‘미래주거추진단장’이란 사람은 <방 3개 임대주택, 내가 사는 아파트와 차이가 없다.>라고 말하자 시무(時務)7조를 쓴 조은산은 <배부른 부르주아의 섣부른 자비>라고 비꼬면서 행동의 보편적 기준을 무시하지 말라고 충고한바 있다.

무엇보다 규범의 보편성이라는 자유주의적 신조를 기분 나쁘게 바꾸면서 “세상이 바뀌었다는 것을 확실히 느낄 수 있게 할 것”이라고 매일매일 수선을 피우는 세상이고 보면 집안에 가만히 있다는 것은 숨막히는 고통임에는 틀림없다.

무엇보다 도덕적 규범과 자유, 그리고 정의가 파멸되는 현장을 체험한다는 것은 소름끼치는 일이기 때문에 현재의 집에서 자연히 떠나는 것이다.

특정 정치집단의 이익만을 위해 정책을 펴면서 2025년까지 쓸 예산을 지금 몽땅 소진하고 있다는 것은 <나라의 영혼>을 훼손하는 정치 현상이기 때문에 하루라도 “이유 있는 변화”를 찾기 위해 집을 떠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사회의 중추적 세대들이 한 달간이라도 집을 떠나 살 것을 고집하는 데는 무엇보다 분열의 정치를 보면서 반대편을 무자비하게 짓밟아 버리는 폭정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타협이나 양보도 없이 투철한 진영의 고정된 이념 체계를 서슴없이 실천하면서 인간의 천부적 권리인 “자연권”마저 부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자연권이란 하늘이 부여해준 권리로서 국가라 해도 결코 침해 할 수 없는 절대적이고 배타적 권리임에도 불구하고 자기들 입맛에 뒤틀리면 모든 것을 거부 하거나 부정해 버리는 만용(蠻勇)을 일삼는 것이 다반사다.

무엇보다 한 달 살기는 행복을 중요시하는 가치관의 목표를 찾는 일이다. 사회가 혼란스럽고 정치권력이 한쪽 진영의 이익만을 대변하는 현실을 젊은 사람들은 용서하지 못하는 것이다.

젊은 사람들의 용기는 역사의 변혁을 주도하는 원동력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사회가 안정되고 정치권의 보편적 정당성이 실천될 때 새로운 희망의 길이 열릴 수 있지만 지금처럼 <선택적 정의>만을 실천하는 세력이 계속 광기를 부린다면 희망은 없는 것이다.

따라서 일시적으로 집을 떠나 새로운 가치관을 찾고자 하지만 법치(法治)가 해체되는 현장이 계속된다면 성숙한 희망은 결코 오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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