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해범(창원대 교수, 전총장)
최해범(창원대 교수, 전총장)

경남교육청은 2016학년도부터 고등학교 입학전형에서 평준화지역 일반고등학교 추첨 배정방식을 기존의 ‘학교 배정 희망에 의한 선지원, 후추첨 방식’에서 학생의 성적을 '9등급'으로 나누고, 등급별로 학생들이 지망하는 학교에 배정하는 방식으로 변경하였다.

이른바 기존의 중학교 내신성적과 무관하게 학생 선택에 따른 고등학교 배정방식을 성적에 따른 등급별 배정방식으로 바꾸어 완전한 고교평준화를 선언한 것이었다. 그리고 이 제도는 아무런 비판 없이 현재까지 시행되고 있다.

경남교육청은 이에 대해 "평준화 정책의 근본 취지를 살려 학교 교육력을 향상시키려고 배정방법을 변경했다."라며 "이로써 평준화 지역 학력 격차 해소 및 교육역량 강화로 학생과 학부모 교육만족도와 학생의 대학진학에 크게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라고 하였다.

그러나 이후의 고등학생 학력평가나 대학진학에서 과연 경남의 일반고 교육력이나 교육역량이 강화되었는지에 대하여 의문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학부모들의 불만이 이어지자 그 개선안을 내 놓았지만 근본적인 대책은 아니다.

다른 시도를 보면, 우선 서울교육청은 1단계에서 서울시 전체 고등학교 중에서 2개교를 선택·지원하게 하여 모집 정원의 20%를 배정하고, 2단계에서 거주지 일반학교군 소속 고등학교 중에서 2개교 선택·지원하게 하여 모집 정원의 40%를 배정한다.

아울러 3단계(통합학교군)에서는 1, 2단계에서 전산 추첨 배정되지 않은 학생들을 대상으로 통학 편의, 학교별 배치여건 및 적정 학급수 유지, 종교 등을 고려하여 배정한다. 즉 서울은 우선 학생의 선택을 존중하고, 다음으로 거주지나 학교별 배치 여건을 고려하고 있다. 하지만 성적 등급별 배정은 하지 않고 있다.

부산도 서울과 유사하다. 학생의 지망에 의한 선지원, 후추첨 배정의 원칙은 동일하나 주소지 정보에 의한 통학권 내 지리정보 배정방식을 적용하여 학생의 성적 등급과 무관하게 학교를 배정한다.

1단계 광역학군 배정에서 학교별 정원의 40% 배정하고, 2단계 지역 학군 배정에서 학교별 정원의 20% 배정한 후, 3-4-5단계에서 광역과 지역, 통합 학군으로 나머지를 배정하고 있다.

부산도 마찬가지로 우선 학생의 학교 선택을 존중하고(광역학군) 다음으로 지역 학군에서 주소지를 기준으로 학생의 선택을 고려하여 배정하고 있다.

대구교육청은 우선 IB(인터내셔널 바깔로레아) 운영 학교와 교과중점학교에 추첨으로 우선 배정하고, 다음으로 1단계, 2단계를 거쳐 추첨하여 배정하고, 마지막 3단계는 지리정보를 중심으로 배정하고 있다.

대구교육청의 배정방식을 눈여겨보아야 하는 것은 IB 운영학교와 교과중점학교에 우선 배정하는 방식인데, 현재 IB 운영 학교인 경북사대부고와 영남고를 비롯한 6개 과학중점학교, 음악중점학교인 신명고, 수성고를 비롯한 3개의 미술중점학교에 해당 학급수 만큼의 인원을 미리 배정하고 이를 희망하는 학생을 우선 배정하고 있다.

이는 미래사회에 걸맞은 배정방식으로 학생의 진로희망과 선택을 존중하는 가운데 학교의 교육과정 다양성과 역량 강화를 함께 도모하고 있다.

현재 경남의 학교 배정 방식은 크게 바뀌어야 한다. 고교평준화를 유지할 수밖에 없다면, 학생의 학교선택권을 존중하여 등급과 무관하게 학생의 희망에 따라 배정하고, 이 가운데 자연스럽게 각 학교가 교육과정을 다양화하게 하고 나름의 개성 있는 교육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학교 스스로 교과중점학교(과학, 사회, 국제, 예술, 체육, 컴퓨터, 융합과학 등)를 만들어 갈 수 있게 하고, 바깔로레아와 같은 글로벌 역량을 키울 수 있는 학교나 기독교와 카톨릭, 불교 등 종교 중심 교육을 할 수 있는 학교도 양성할 수 있게 하여 교육과정을 다양화하고, 그 다양한 교육과정과 학교의 교육역량을 바탕으로 학생들이 학교를 선택할 수 있게 해야 한다.

고입 평준화 정책은 중학교를 입시와 과외의 전쟁터에서 벗어나게 하는 데 기여한 점이 있다. 고교평준화 정책은 이미 거스를 수 없는 정책이 되었다 하더라도 이 고교평준화 정책이 가지고 있는 맹점도 다시 한 번 되짚어 보아야 한다.

교육 정책의 큰 방향을 가늠하는 두 가지 가치가 효율과 평등(형평)이다. 우리와 같은 자유 민주주의 국가에서 평등의 가치만큼이나 효율도 중요한 정책 목표이다. 우리 경남의 고교평준화와 등급별 배정방식은 지나치게 평등에 무게를 둔 사회주의적 교육 정책이 아닌지 곱씹어 보아야 한다.

경남의 고교평준화지역 다섯 개 학교군의 배정방식을 단순한 통합과 등급별 배정으로 치부하지 말고, 진정으로 학교 역량과 학생 선택을 존중하여 어떻게 경남의 교육역량을 강화할 수 있을지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몇 년 전 양산시의 고교평준화는 주민들의 반대로 무산된 사례가 있다. 양산시의 경우, 통도사(하북면) 지구의 보광고와 양산 동부의 효암고, 서창고, 웅상고, 현재 양산 중심지(서부)의 양산고, 양산여고, 양산제일고, 범어고, 물금고, 동부고 등 6개교를 물리적으로 통합하여 평준화를 시도하다가 실패하였다.

차라리 양산시의 경우도 동부와 서부, 북부를 통합하여 평준화를 하는 것보다도 각 지역의 여건에 맞게 학교들이 교육과정을 다양화하고 학교 역량을 강화하도록 하는 것이 우선이 되어야 한다.

교육 정책을 어떻게 결정하고 이를 시행하는가에 따라서 그 지역의 학교 역량이나 교육력이 달라질 수 있다. 그래서 지역의 교육정책을 결정하는 시도교육청의 정책도 신중해야 한다. 사람을 등급별로 나누어 물리적으로 평균값을 내는 것은 무리가 있고, 옳은 일이라고 설명하기도 어렵다. 그만큼 사람은 가늠하기 어렵고 복합적인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교육청이 나서서 온갖 문제를 통제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대부분의 학교 문제는 학교 스스로가 해결해 갈 수 있도록 자치 역량을 길러주는 것이 필요하다. 고교평준화도 모자라서 학생의 성적등급별로 학교에 배정하는 것도 시급하게 시정해야 할 경남교육의 폐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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